거룩한 장소
미사는 통상적으로 지정된 장소, 교회라는 성화된 장소에서 거행됩니다. 어쩌면 성서 말씀에 근거해서 “고요한 골방”이야말로 올바른 장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자연 안에서 가까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실 교회는 세상을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하느님만이 거룩하시며‘거룩하심’은 그분의 본질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이 신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배우고자 한다면 예언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하느님이 오시어 머무르시고 당신의 거처로 삼으심으로써 그 장소는 거룩해집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진리는 어떤 실질적인 것 본질적인 것이 드러나고 그에 대해 언급된 것을 말합니다. 진리에도 여러 등급이 있습니다. 다른 진리에 비해 더 고상하고 높은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높고 거룩한 진리는 하느님이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참 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이러한 새로운 현존 방식이야말로 하느님의 궁극적인 사랑의 신비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이렇게 주님이 오시고 머무르시고 떠나가는 장소입니다 ”이곳은 그분이 오실 거룩한 장소다. 여기에서 그분이 머무르시다 다시 가실 것이다“라는 말을 자신에게 함으로써 분심으로부터 벗어나고 습관적인 태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턱으로서의 제단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장소인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 갈 때마다 마음을 늘 새롭게 합니다. 이것은 올바른 신심에 속하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이곳에 머무르시면서 듣고 말하고 행동하며 자신이 맡은 일을 합니다. 사람들은 그 거룩한 공간 안에서 교훈, 가르침, 그리고 힘을 얻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공간은 세분화됩니다. 주님을 기념하는 행위는 교회 안의 아무 공간에서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자리, 즉 제단에서 거행됩니다, 이 제단은 신비스러운 장소입니다. 제단은 문턱이고 동시에 식탁입니다. 문턱은 경계와 넘어섬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가집니다. 무언가가 끝나고 또 다른 무언가가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제단은 문턱으로서 우선 세상이라는 인간의 영역과 하느님의 영역을 구분해 줍니다. 하느님은 알 수 없는 분, 저 멀리 계신 분, 붙잡을 수 없는 분이며, 권세와 주권을 가진 분, 지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이 저 멀리 더 높은 곳에 계시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본질 자체, 즉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하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전례는 본질적으로 상징입니다. ‘상징’이란 의미하는 바가 감추어져 있지만 형체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제단은 은유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입니다. 모세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물 떨기로부터 주님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사람들이 한 번쯤 하느님 앞에서 놀라고 거룩한 곳으로부터 내쫓기는 체험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그는 내적으로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나는 그저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이런 체험을 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단은 이러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문턱은 연결과 만남의 장소입니다. 계시의 핵심 내용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은 계시되어야 하는 신비입니다. 하느님이 누구이시고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아야만 올바로 의식할 수 있습니다.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편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사랑이고 이 사랑으로 하느님은 인간이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가까이에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뛰어넘는 체험, 건너오고 건너가는 체험은 하느님과의 내적인 심오한 관계를 드러내는 그리스도교의 근본 체험입니다. 단순히 지속적으로 걸어가는 체험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서 한 걸음 내디딤을 의미합니다. 서로 다른 영역이 있어서 문이 열리기도 하고 닫힐 수도 있습니다. 확신이 무례함으로 이어지거나 신뢰가 경솔함으로 은총에 대한 확신이 타성으로 변질되면 문은 닫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모든 것이 다 잘 되었다고 생각할 때 가장 굳게 닫힙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거룩한 장애물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기도’는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신비를 실현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부를 때마다 우리는 그분이 세우신 문턱에 서게 되고 또 그것을 넘습니다. 교회 안에서 제단을 통해서 이 문턱이 분명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구원을 위한 봉헌을 통해서 이러한 봉헌은 하느님의 아들의 강생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 문턱은 궁극적으로 분명해집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이 누구이시고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명백해짐으로써 제단은 하느님과 우리를 갈라놓는 경계로서 드러납니다. 제단은 참으로 ‘거룩한 장소’임이 분명합니다.
식탁으로서의 제단
우리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개념이나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이런 것들은 본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형상이 본래적인 것이고 생각은 그 깊이를 열어 갑니다. 형상은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형상을 파악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라보는 것이 생각하는 것보다 생생하고 더 충만하고 더 깊고 더 풍부합니다. 우리는 과소평가되고 쇠약해진 관조의 능력을 일깨우고 수련해야 합니다. 주님께 제물을 바치는 것은, 주님이 민족 안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생활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그분께 속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짐승은 오로지 제단 앞에서만 죽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피를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모든 생명이 그분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오심으로써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구원이란 그저 용서와 의화만을 의미하지 않고 세상이 아버지께 되돌려지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다시 순종과 사랑으로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 세상이 모두 하느님 안에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제단에서 실현되는 하느님의 사랑과 친교의 신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저 아주 오래, 계속해서 사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분의 생명이 시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의미하는 것처럼 그분은 성장하지도 시들지도 발전하지도 변하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느님은 당신의 무한한 삶을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현재 안에 실현하십니다. 주님의 날이 거룩한 것은 하느님이 그날 쉬셨다는 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청조의 맥락 안에서 하느님의 ‘쉼’의 신비가 존재합니다. 하느님은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하시고ㅡ 일어나 작업하시고 질서를 세우시고 형상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일을 다 마치고 나서 쉬셨습니다.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가지셨던 하느님의 고요의 신비를 마음에 새기고 이를 흠숭하며 이 거룩한 하루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주일 안에는 우리의 자연적인 삶에서 오는 중요한 욕구가 표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일이 쉽게 파괴되곤 합니다. 거룩하게 지낸다는 것의 의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억지로 휴식을 취한다고 하면서 지루해하는데 이것은 일을 하는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 전례와 관련된 가르침에 의하면 하루는 아침이나 한밤중이 아니라 전날 저녁에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날은 이와 달리 늘 새로이 생겨나는 생명의 형태입니다. 잠이란 본질적으로 잠들기 전의 시간들에 의해 결정됩니다. 누구나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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