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종교생활에서 침묵이란 단어는 대체로 집중이라는 단어와 함께 등장합니다. 침묵은 소음과 잡담의 극복이며 집중이라는 단어와 함께 등장합니다. 침묵은 소음과 잡담의 극복이며 집중은 분산과 산만에 대한 승리입니다. 침묵은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안에 있는 고요함을 의미합니다. 집중이란 세상의 다양한 사물과 사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무언가를 창조하고자 하는 힘으로 충만한 사람 안에 살아 움직이는 어떤 통일성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주의력은 일반적으로 주의의 사물과 사람들을 지향하고 다양한 현상들에 이끌려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게 마련입니다. 집중은 잡다한 하나로 모아 줍니다. 여러 가지 매혹적인 것들로부터 마음을 잡아주고 중요한 것을 지향하게 합니다. 집중은 무언가를 피하고 혼란스러운 자극이나 활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집중은 그 자체로 의미 있습니다. 깊이와 힘을 가지고 있으며 살아 있는 무엇입니다. 집중하고 있는 사람만이 참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만 참으로 말을 걸 수 있고 응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내적인 깨어 있음입니다. 중요한 것에 대한 앎, 책임지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 살아 있는 감정 그리고 생명에 대해 준비된 마음입니다. 내적으로 올바른 자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조금 일찍 교회에 와야 합니다. 교회 문을 들어설 때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대체로 불안정하고 어수선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느님과 대화하기에 적당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저 감정, 상상, 생각 그리고 계획 등으로 뒤얽혀 있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정서를 한데 모아야 합니다.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거룩한 전례에 참여하는 것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고 나는 온전히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노력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산만한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가족, 친구, 경쟁자 등 자기와 관련 있는 사람들, 직장일 집안일 개인적인 약속 등 온갖 생각을 합니다. 늘 자신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합니다. 인간만이 산만해 질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정신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자연을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정신은 세상을 향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자신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물론 산만함을 극복하고 집중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정신 안에는 무언가 신비스러운 것이 존재합니다. 영원한 무엇이 담겨있습니다. 영혼의 바탕에는 내적이며 심오한 고요함이 영의 정상에는 고상하고 품격 높은 고요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것을 떨쳐 버리고 고요히 자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을 때“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집중과 행위
침묵함으로써 올바르게 말하고 들을 수 있게 되듯이 집중함으로써 올바른 태도와 행동이 가능해집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우정과 사랑과 같이 인격으로 맺어진 공동체에서 일을 할 때 어떤 행위가 올바르게 이루어지느냐는 내가 얼마나 내적으로 그 일에 관여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집중이란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잡다한 것을 잊고 지금 중요한 것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여기’ 계시다는 것은 커다란 신비로서, 인간도 그분 앞에 나아가 응답해야 합니다. 이를 이탈리아로는 ‘fare atto di presenza'라고 하는데, 매우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현존하고 있음을 실행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 생각과 관심, 주의력과 경외심 그리고 사랑을 가지고 현존해야 합니다. 이것이 다름 아닌 집중입니다. 집중하고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현존을 영과 마음으로 품을 수 있고 그분께 나아가 그분의 자비로우신 사랑에 대해 경배와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외적으로 바른 자세를 갖출 수 있습니다. 전례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살아 있는 행위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가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는 사심만으로, 그가 아무 말고 행동도 하지 않더라도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 성인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중세의 그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움직임이나 말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내적인 현존이 충만합니다. 현존한다는 것은 내적인 행위이고 태도 전체를 통해서 표현됩니다. 만일 미사 후에 존경하는 사람을 방문하게 된다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앉는 행위 역시 교회 안에서는 편안하게 자리를 잡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집중하여 귀를 기울이는 자세입니다. 무릎을 꿇는 것도 사냥꾼이 총을 겨냥하는 자세와는 다릅니다. 이것은 하느님 앞에 올바른 모습을 봉헌하는 행위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서 있는 행위도 길을 가다가 잠시 서 있거나 움직일 자세를 갖춘 채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작보다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주님께 대한 경외의 자세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본다는 것은 자신 앞에 있는 사물을 그 본성에 따라 파악하는 것이며 함께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인간의 눈길은 인간 전체를 의미합니다. 누군가 경건하게 제대를 향해 바라볼 때 이것은 거룩한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을 확인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제대로 눈을 향하는 것은 이미 전례에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표시를 하는 행위는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상징과 접촉하며 우리의 영혼이 구원의 표상으로 관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신앙을 고백하고 그분의 힘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동작입니다. 전례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느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전례는 고상한 의미에서 목적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례는 거룩한 예배라는 의미에서 충만하고 그 위에는 하느님의 높으심이 펼쳐집니다. 집중이야말로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중하기 위해 최선을 대해야 합니다. 집중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답답하고 지루하고 경솔해지며 결국 하느님의 엄위하심을 욕되게 할 뿐입니다.
집중과 동참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마음으로부터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이란 사제를 말합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존재합니다. 사제가 자신의 직무에 속하는 권한으로 하는 행위와 말씀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무언가를 이루십니다. 그리고 돈을 헌금 통에 넣을 때에도 하느님 앞에서의 경건함과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넣어야 합니다.
집중을 통해서만 전례행위가 시작됩니다. 미사 책을 사용하고 성가를 열심히 부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본 전제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집중 그리고 집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동참 행위는 수련 과정의 필요합니다. 기도 행위와 종교행위는 삶입니다. 삶은 저절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봉사와 노력 없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께 드리는 봉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말을 진지하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봉사란 내적인 충동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었을 때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봉사이기 때문에 외적인 행위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내적인 행위입니다. 내적인 동참이 곧 하느님께 드리는 봉사, 예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배우고 늘 새롭게 수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좀 더 분명하고, 진실하고 깊이 있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원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수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그런 생생한 체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행위가 이루어질 때마다 하느님으로부터 늘 새롭게 세상과 시간 안으로 들어오는 불변의 구원 행위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이루어지는 이 사건을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주셔야만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느님께 대한 신의를 지키고 하느님께 봉사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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